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도전(드라마)/역사적 사실과의 비교 (문단 편집) === 제15회 === * 극중에서 이성계가 호바투와 맞서기 위해 출진한 동북면 진중에 방원이 어사화를 머리에 꽂고 과거합격장인 홍패를 든 채 이성계를 찾아와 과거에 급제한 것을 알리는데 이성계의 반응이 영 냉랭하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선 이방원이 이성계 가문의 첫 과거급제자여서 이성계가 매우 기뻐하였고 이방원의 과거 사령장을 몇 번이고 읽게 했다고 한다. '군인 집안'이라는 열등감을 확 씻어준 아들에 대한 태조의 기쁨을 엿볼 수 있는 부분. 전반적으로 본 작품에서 이성계가 아들인 이방원에게 좀 냉랭한 편인데 실제역사에선 정몽주를 죽인 이후부터 눈 밖에 나기 시작했으며 그전까지는 아끼던 아들 가운데 하나였다.[* 사실 위화도 회군 당시 인질로 억류당할 것 같자 일가친척들을 데리고 함흥으로 피신하는 결정을 내린 사람이 바로 이방원이었고 공양왕 4년 이성계가 황해도에서 머무르다 낙마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조정 내에서 반이성계파가 득세하게 되고 정몽주가 이 기회를 타고 정도전 등 친이성계파를 유배보내자 바로 황해도로 내려가 부상을 입은 이성계를 개경으로 데려오기도 하는 등 조선개국에서 이방원의 공이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작중에서는 이지란이나 정몽주가 칭찬하자 미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장면이나 신이 나듯 어사화를 여러번 돌려보고 만져 보고 하는 행동 등으로 내심 기분이 좋은 듯한 묘사를 보여 주었으니 단순히 반응이 냉랭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단지 실제 역사에선 몇번이고 합격장을 읽게 할 정도로 난리를 피우며 좋아한데 반해 본작의 이성계의 반응이 너무 침착한게 문제일 뿐. 이는 제작진이 작중의 이성계의 캐릭터에 맞춘 각색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 작중에선 이성계에게 이방원이 무장이 되고 싶다 의견을 피력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문신으로서 일했다. 뭐 실제역사에서도 사냥을 좋아하는 등 무인 기질이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에 대한 동경심과 젊은이의 혈기로 인한 것으로 보면 어느 정도 극적 허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이방원의 과거 급제에 정몽주에게 가르침을 받은 식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기록에는 없다. 이방원의 스승은 장인이 되는 민제[* 뒷날 태종이 된 이방원은 장인의 집에 찾아가 술자리를 열었는데 술에 취해서 "오늘은 장인어른을 옛날처럼 사부님이라고 부르고 싶으니, 장인어른께서도 저를 이 선달이라고 불러 주십시오"라고 제안하여 그대로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와 당대의 문인인 운곡 원천석이다. 다만 이성계와 정몽주가 친밀했던 것을 감안하면 정몽주가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을 가능성 정도는 있을 것이다. * 작중 최영이 쌀을 가지고 장난을 좀 친 상인을 가혹하게 처벌하는데 정도전과의 극중 대화는 각색이지만 실제 역사에서도 백성들에게 엄한 인물이었다. 전쟁시 군사들이 한 걸음이라도 물러서면 곧 참형에 처했으며, 공민왕 때 6도의 군사를 다스리며 배 2000척(!)을 만드는 과정에서 독단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70세 이상 된 자에게도 등급에 따라 곡식을 징발하는 바람에 집을 부수고 도망가는 백성이 50~60%에 이르렀으며 원성이 많았다고 한다. 또 상인들도 별로 좋게 안 봤는지 벼슬을 구하는 사람에게 "네가 공장(工匠)이나 장사꾼의 일을 배웠다면 절로 벼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일갈하기도 했고 최영이 갈고리를 들고 상인들에게 호통치는 것 역시 고려사의 기록을 토대로 한 것이다. * 우왕이 궁궐 지붕 위해 올라가 광포한 행동을 하고 환관을 활로 쏘기도 하는데 실제로 우왕이 궁궐 지붕에 올라갔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있다. * 극중에서는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기 위해 동북면으로 갈 때 정몽주와 서로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한것으로 그려지지만 실제 역사 상으로는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난 것은 정몽주의 추천 덕분이었다.[* [[삼국지연의]]에서의 [[방통]]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그러나 이미 황산대첩 이전에 정몽주가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을 주선하였다가 불발된 사건도 있고, 이후로 가끔 정몽주가 정도전을 극찬하는 말을 이성계에게 하곤 했으므로 역사적 사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긴 무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